🌹 시그널센트
— 향기신호를 보내다
Signal Scent Perfume Tales : SUGAR ROSE
💌 향기의 연인
서울 한켠의 오래된 골목길,
낡은 골동품 가게들 사이에 작은 향수 공방이 하나 있었다.
간판조차 바래어 그 이름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종종 발걸음을 멈췄다.
이유는 단 하나ㅡ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달달한 장미향 때문이었다.
그 향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리움, 첫사랑, 혹은 이름 모를 설렘을 떠올리게 했다.
그곳의 주인, 연서는 향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만드는 건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그녀는 단순히 향료를 섞는 조향사가 아니라, 향 속에 기억을 담는 사람이었다.
연서의 공방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향이 되어, 다시 신호(signal)를 보낼 뿐입니다. ”
그녀의 향수는 모두 사람의 기억 조각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의뢰인이 가져온 물건 — 오래된 편지, 낡은 손수건, 헤어진 연인의 반지 —
그 안에 스민 향을 추출해 향수를 완성했다.
잊혀진 순간들, 그 안에 스며든 향을 분석해
‘기억의 신호’를 복원하고, 그것으로 향수를 만든다.
그녀의 향수는 단 하나의 법칙을 따른다.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사람만이 향기의 신호를 느낄 수 있다.”
그날 밤, 공방 문이 열렸다.
낯선 남자가 들어왔다.
회색빛 눈동자, 왼손엔 금이 간 유리병 하나.
“당신이 Signal Scent의 조향사입니까?”
그는 낮게 물었다.
“이 향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연서는 병을 받아들었다.
병 안엔 말라버린 장미 한 송이와
설탕 결정처럼 하얗게 굳은 가루가 들어 있었다.
그녀가 병을 여는 순간,
순식간에 달콤하고 묘한 향기가 퍼졌다.
그건, 분명…
그녀가 알고 있는 향기였다.
기억이 번쩍 떠올랐다.
빛, 웃음, 장미, 그리고…
한 남자의 손.
“Sugar Rose.”
그녀가 속삭였다.
“이 향의 이름은 Sugar Rose예요.”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기억나시나요?”
“이 향은… 내가 만든 첫 향수예요.”
“그리고 나의 마지막 숨결이 담긴 향이기도 합니다.”
연서의 눈이 흔들렸다.
그는 십 년 전 불길 속에서 사라진, 그녀의 연인이었다.
그녀는 그 사고 이후, ‘사랑’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신 ‘향’만 남았다.
그 향이 바로 Sugar Rose.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날, 당신은 내게 말했죠.
사랑은 언젠가 사라져도, 향은 남을 거라고.”
그는 병을 연서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신호입니다.
Signal Scent의 법칙대로라면,
이제 그 신호가 당신에게 도착했을 거예요.”
연서는 향수를 열었다.
순식간에 공방 안이 분홍빛 장미향으로 물들었다.
달콤한 설탕 냄새와 섞여 온 세상이 흐릿하게 빛났다.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잊어버린 기억들이 폭발하듯 흘러들었다.
— 장미꽃잎 위에 설탕을 뿌리며 웃던 두 사람.
“우리의 향은 달콤해야 해. 그래야 영원히 잊지 못할테니까.”
그의 손끝에 닿았던 따뜻한 체온.
그리고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언젠가 향으로 돌아올게.
그러면, 그 향이 나라는 신호일 거야.”
눈을 떴을 때,
그는 사라지고, 향기만 남았다.
‘Sugar Rose.’
달콤하지만 어딘가 슬픈 향기.
연서는 병을 꼭 쥐었다.
“이제 알겠어요.
당신은… 향이 되어 돌아온 거군요.”
며칠 뒤, Signal Scent의 진열장 한가운데
새로운 향수 하나가 놓였다.
〈Sugar Rose〉
— The Signal of Lost Love.
누군가가 그 향을 맡으면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린다.
“이 향, 이상하게 익숙하네요.
누가 나를 부드럽게 부르는 것 같아요.”
연서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미소 지었다.
그녀는 안다.
그건 단순한 향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아직 이어지는 사랑의 신호라는 걸.
밤이 내리고,
공방의 불빛이 꺼질 무렵,
연서는 혼자 향수병을 열었다.
달달한 장미향이 공기를 채운다.
그녀는 눈을 감고 속삭였다.
“Sugar Rose. 나도 들었어요.
당신의 신호를.”
공기 중에 희미한 목소리가 스쳤다.
“그럼, 나도 안심이야.
내가 향기로 남은 이유는
결국, 당신에게 닿기 위해서였으니까.”
공기 속에 분홍빛 장미 향이 천천히 번져갔다.
연서는 향수병을 품에 안고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눈을 감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서서히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잊고 있었다 — 사랑이 어떤 온도였는지,
누군가를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따뜻했는지를.
그의 목소리는 이젠 들리지 않았지만,
향기 속엔 그가 남긴 감정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달콤하고 부드럽게, 가슴 한가운데로 스며드는 그 향은,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마음을 살며시 깨웠다.
“이젠 알 것 같아요.”
연서는 낮게 속삭였다.
“당신이 남긴 신호는, 나에게 사랑을 다시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었군요.”
공방 안은 여전히 Sugar Rose의 향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향은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리움 대신 따뜻함이, 이별 대신 시작이 남았다.
연서는 향수병을 진열장 한가운데 올려두었다.
그 옆에는 조용히 적힌 문장 하나.
‘Sugar Rose
— Love begins again.’
그녀는 문을 열고 골목길로 나섰다.
밤공기 속으로 퍼지는 달콤한 장미 향이 발끝을 감쌌다.
그 향은 이제, 과거의 신호가 아니라
사랑을 다시 느낄 수 있게 된 사람의 향기였다.
연서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야 이해했어요. 사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때로는 잠들어 있다가… 다시 향으로 피어나는 거였네요.”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이 불었다.
분홍빛 장미 향이 부드럽게 흩날리며,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속삭였다.
“사랑의 세계로 돌아간 걸 축하해. 연서야.
언제 어디서나 행복하길.”

<끝>
기묘한 향수 이야기
(Signal Scent Perfume Tales) 시리즈는
모든 향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Every Scent Holds a Memory) 라는 주제로
시그널센트의 향수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 Tales no.1 : 슈가로즈 – 향기의 연인


Tales no.2 : 마린허브 – 심해의 기록 (Story Coming Soon)
Tales no.3 : 젠틀우드 – 고요의 숲 (Story Coming Soon)
